야야~ 내 처음으로 집에서 짬뽕 시켜 먹었다.
◈생활속... :
2008/08/06 19:17
역시 나는 아직도 어른들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 어린 아이였다.
시엄니께 전화를 드렸다.
그러자 엄니 대뜸 상기된 목소리로 자랑을 하신다.
"야야~ 내 오늘 처음으로 집에서 짬뽕 시켜 뭇다."
오잉?
집에서 짬뽕을 시켜 먹을 수도 있지 이게 며느리에게 자랑할 일이던가 한다면 그건 나의 시엄니 시아버지를 몰라서 하는 말일 것이다.
엄니는 평생을 아버님과 자식들 입에 들어 가는 것은 손수 집에서 해 주셨다.
나 역시 시집와서 15년이 넘도록 밖에서 외식 한번 한 적 없을 정도로 주방을 벗어나질 못했던 것이다.
물론 두분이서 집을 떠나 여행을 가시면 사 드시지만...
그렇게 아버님의 엄하심과 어머님의 챙기심이 한번도 외식으로 이어진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두분이서 집에서 뭘 시켜 드시지도 않는다..
예전에 어렵게 사시던 분들이라 뭘 시켜 먹는다는 자체가 호사라고 여기셨던 것이다.
하지만 동서와 나는 반란을 일으켰었다.
"우리도 주방에서 벗어 나고파~~~요..우리도 건전하게 노는 문화 좀 마련 하자고요~~"를 외쳤고 그 첫번째 단계가 엄니 아버지 모시고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령이 되면서 수전증이 생긴 아버님은 앞접시를 따로 마련해 주어도 많이 흘리시는 편이라 탁 틔인 식당을 갈라치면 남의 눈치를 보시는 것이다.
우리 식구야 그렇다 치고 혹여 다른 사람이라도 보면 입맛 떨어질까를 우려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예약을 할때는 주로 방으로 했고 또 방이 따로 있는 집을 물색하기로 한 것이다.
설상가상 허리 수술 후 더 못쓰게 된 허리 때문에 아버님은 외출도 부자연스러우시니 어머님은 아버님의 끼니를 차리시는데 더욱 더 애를 먹었다.
하지만 남자가 나이가 들면 이빠진 호랑이가 된다고 했었던가...
나의 시아버님 역시 엄니의 기세에 점점 눌리시는 듯 하다.
얼마전 부터 끼니때만 되면 밖에서 노시다가도 아버님 밥차려 주러 오시던 엄니가 이젠 밑반찬 해 두고 "밥 있응게롱 국 데워서 챙겨 드셔~" 그러고는 아예 안 들어 오신다.
이때부터 난 아버님이 약간 불쌍해 보였고 남편은 늙어서 밥한끼 제대로 얻어 먹을려면 젊었을 때부터 잘해야 한다는 큰 교훈(?)을 받고는 지금도 그 교훈을 명심하고 있다...ㅋㅋㅋ
며느리인 내가 간다고 해도 엄니는 이미 점심 준비를 해 놓으신다..ㅠㅠ
어느날 부터인가 내가 엄니께 말씀 드렸다.
아버님 계신 자리에서 아주 용감하게...
"엄니, 엄니가 밥은 해 두시지만 설거지는 제가 해야 되잖아요...가까운 길도 아니고 먼 길 혼자 운전해야 하는데 설거지 할려니 너무 피곤해...우리 이제 나가서 사 먹읍시다~ 저도 이제 나이가 쪼매 드나봐요..장거리 운전 힘들어요.."
그때 엄니가 아버님을 쳐다 보던 그 눈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ㅎㅎ
그럼서도 엄니는 "그래..그러자..나도 이젠 힘들다..."
그렇게 내가 갈 때마다 나가서 사 먹으니 집에서는 해 먹기 어려운 것들...아버님 좋아하시는 것들로 메뉴를 선정해 차에 태우고는 모시니 아버님도 이제는 잘 따라 나서신다.
아니 이제는 내가 갈 때 여산 휴게소 쯤에서 전화를 드리면 그때부터 옷 챙겨 입고 대기를 하신단다...ㅎㅎ
그런데 오늘 아버님이 먼저 엄니께 그러셨단다.
"짬뽕 시켜 먹자..."
좀 뭣한 이야기지만 엄니 말씀을 그대로 빌리자면..
"야야~ 내 오늘 니 아부지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이 양반이 노망이 들었나..싶더라...우짜다가 내가 밥하기 싫어 한번 시켜 먹자면 불호령 떨어지던 양반이 먼저 그렁게롱 내 참 말이 안 나오더라..."
"그래서 어쩌셨수?"
"어쩌긴 다시 물어 봤제...그랬더니 화를 버럭 내는겨..."
"뭐라고요?"
"귀 먹었어? 짬뽕 시켜 먹자고..."
"아니..그게 아니라..당신이 뭘 시켜 먹자니 이상하잖여~~"
"날도 더운데 밥하는거 귀찮잖여..그냥 시켜 먹자.."
"덥다면서 뜨거운 짬뽕은 왜?"
"싫음 말어..."
"누가 싫댜? 어디다가 시키지?"
전화번호가 있을리가 없다...ㅎㅎㅎ"아니..그게 아니라..당신이 뭘 시켜 먹자니 이상하잖여~~"
"날도 더운데 밥하는거 귀찮잖여..그냥 시켜 먹자.."
"덥다면서 뜨거운 짬뽕은 왜?"
"싫음 말어..."
"누가 싫댜? 어디다가 시키지?"
그래서 노인정에 전화 해서는 중국집 전화번호를 물어서 시켰다나 뭐라나...ㅎ
여튼 오늘은 울 시엄니 평생에 기록에 남을 날이다..
70하고도 중반을 넘기신 연세에 처음으로 집에서 중국집에 전화를 하신게다...
오늘 엄니로부터 아버님의 며느리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니 아부지가 너 올때마다 나가는거 이제는 힘드신갑다...그런데도 너 온다면 미리 기다리신다?"
"힘들면 이야길 하시지..에고...전 좋아하시는 줄 알았어요...내가 가면 차 타고 어디든 외출을 하니...그게 낙인줄 알았지..왜 말씀을 안 하셨다요?"
"아니, 좋아는 하셔...몸이 힘들어서 그렇치..니가 때 맞춰 오니까 집에 올라오면 점심 늦잖냐..그럼 너 배고프다고 아예 내려 가셔서 기다리시는겨....그리고 니 말 맞다나 먼거리 왔다 갔다 혼자 운전하는데 피곤하다고..혹시라도 피곤해서 가면서 졸면 어쩌냐고 설거지 안 시키고 너 힘들게 안 할려고 나가시는겨...마누라 생각을 그만큼 해 주지 못땐 양반..."
"설거지 한다고 피곤할라꼬? 난 엄니가 힘드니까눙...그리고 차차 변화를 줄려고 그랬제..에고..앞으로 어쩌지?"
"니 아부지는 말이다...그저 아들 며느리들 편하면 당신이 젤로 기뻐하셔....그래서 난 니가 부럽다..ㅎㅎ"
또 가슴이 메어온다.
나이 마흔을 넘긴 며느리..아직도 철이 덜 들었는갑다.
이번에 둘째 대학 수시 내고 아직 합격 통지도 못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두손을 꼭 잡고 "저 놈 저만큼 키워낸거 다 니 공이다...고생 많았다. 정말 내 며느리 자랑스럽다..."라며 눈물을 글썽이셨던 아버님이다.
아버님이 눈물을 글썽이시다니 많이 약해지셨구나...라고만 생각했지 그 깊은 사랑을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과감히 말한다..
"아버님 사랑합니다...더 오래 오래 곁에 계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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